단테의 달의기억
설산에는 얼어붙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것은 표지판이 아니었다. 그러나 표지판의 기능을 한다. 굳어버린 시체들은 제각각의 팔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이 팔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잿더미가 된 마을이 나왔다. 이곳에서 엄청난 폭발이 있었던 것 마냥 대부분의 건물들은 부서져 있다. 몰려오는 눈보라 속에서는 탄 냄새가 섞여 나온다. 재와 눈으로 덮인 하얀 폐허 속에서 눈에 띄는 오두막이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오두막 안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가 놓여 있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추위 속에서 얼어붙었을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눈더미에 의해 오두막은 완전히 덮여 버렸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형체가 온전했던 그 오두막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어두운 동굴이 보인다. 그 안에서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모든 비명들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계속 방향을 잡지 못해 돌고 있는 나침반이 보였다. 나침반을 들어 올리자, 그 모든 비명은 멈췄다.
방향을 잃어버린 자들의 아우성이 계속해서 메아리 친다. 방향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끝 없는 눈 밭에 제대로 된 방향을 알 수 있을리가.
눈보라 속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꽃밭이 나타났다. 어쩌면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도 될 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할까?
휴식을 취하고 나니 어느덧 추위는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조금 헤맬지도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나아가 보기로 한다.
이곳은 가도 가도 눈보라일 뿐. 아까와 같은 곳은 당분간 발견하기 힘들 것 같다.
모든 손짓들을 무시하고 지나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