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달의기억
품에 칼을 품은 자가 길가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아." 우리를 눈치챘는지, 그는 우리의 행색을 쓰윽 둘러보다가, 다시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았다. "지나들 가쇼. 귀하들에게 위협을 가할 생각은 없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구름 흘러가는거 본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걸." 그 때, 갑작스레 김삿갓이 불쑥 말을 던졌다. …아, 그럼 저 사람이… "…귀하는 날 아나?" "꼭 알아야만 훈수를 두나? 바둑판 근처를 지나가다보면 으레 두는 거지." 그 자는 짐짓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귀하가 나보단 고단수인 것 같으니 말 좀 여쭙지." "내 뒤를 돌아보니 두었던 수가 더럽고 부끄러워 흙바닥에서 칼밥이나 먹고 살려하는데." "청렴하고 정의로우신 분이 나를 주워 칼로 쓰려 하시는데, 그 분 손도 더럽힐까 걱정이거든." "어째, 귀하는 이 수를 두겠나? 아니면…"
"수가 부끄러워도 어떻겠나." "어차피 물러줄 사람도 그 바둑판 위에는 없는 것 같은데, 별수가 있겠어? 둬야지." "그리 갔다가 결국엔 죄다 뜯겨서 크게 집을 잃으면 어쩌려고?" "그러면 돌을 던져야지." "끝까지 갔는데도 그 모양이면 방법이 있나. 일단 끝까지나 가기나 해봐." "어차피 흐름따라 수를 둘 뿐이잖아?" "……." "이제 마주쳤을 뿐인데, 어째 뼛속까지 전부 들여다보신 듯 하군." "이건 훈수값이요." 청년… 아니, 과거의 김삿갓은 뭔가를 깨달은 모양인지 지팡이 같은 무언가를 우리에게 쥐어주곤 어딘가로 뛰어갔다. "…이미 잘못 둔 수, 이어가서 달라질 것은 없지만." 김삿갓의 그런 중얼거림이 슬쩍 들린 것만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