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달의기억
"저, 실례 좀 하겠는데…" S사의 골목을 돌아보던 도중, 한 청년이 혹시 도와줄 수 있는지 어렵사리 말을 붙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자신에게 입신양명의 뜻이 있어 S사의 공채인 과거시험을 보았고,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본래라면 좋은 성적으로 급제한 자에겐 집으로 돌아갈 여비와 안내자를 붙여준다고 들었는데, 무언가 잘못 되었는지 자신에게 아무 마중도 나오지 않아 길을 잃어 여기까지 흘러 걸어내려왔다고 했다. 혹시나 근처의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지 묻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아, 귀하들도 초행인가?" 그럼 어쩔 수 없겠다며, 그 청년은 입맛을 쩝 다시곤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허어." 그 자가 떠나가자, 뒷편에서 모른척 뒷짐을 지고 있던 김삿갓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두, 뭐라 할 말이 있으신겁니까?" "아니, 저거…나 라서." …갑작스러운 발언에 잠시동안 수감자들이 소란스러워 졌다. "아직 천지 무서운 줄 모르고 지 잘난 맛에 떠돌아 다닐 때지." "마침 과거 주제가 역적이었겠다, 신나서 그런 놈이 다시 나타나지 않게 할 방법을 적어놨다가…" "집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겠지. 그 역적이란게 자기 윗대의 선조를 가리키는 거란 걸." "허, 허면… 우두께서 과거에 급제하고서도 관직에 나서지 않으신 것이…" "할래야 할 수가 있었겠니, 앵두야. 왜 저 천치에게 안내자가 붙지 않았을 것 같냐." "나 말곤 다른 사람들은 사정을 전부 알았거든. 자기 선조를 팔아먹고 급제한 후레자식이라고 소문이 파다해졌지." 김삿갓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농짓거리라도 하듯이 말을 뱉곤, 우리보다 앞서서 길을 걸어 나갔다. "뭐, 그렇지 않았더라도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 붓을 꺾었지마는." …살짝 떨리는 손을 얼른 뒷짐을 지고 가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