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달의기억
종이로 가득찬 방이 보인다. 한때는 넓은 방이었겠지만, 지금은 누군가 휘갈긴 종이들로 가득 채워진, 한없이 비좁은 방이다. 이 종이와 서류로 일렁이는 바다속에서 무언가가 헤엄치듯 내게로 온다. 서류로 이루어진 그것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여기는 지옥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지 않은 과제가 모이는 과제들의 지옥이지' '사람들은 그저 과제를 안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저들은 몰라.' '과제들은 언제나 밀리지 않고 제출되길 원했다고!' '밀린 과제들은 잊혀지고 어느새 이곳으로 떠밀려 오지' '그리고 영원히 풀리지 못할 과제가 되어 괴로워하는 지옥에 떨어지는거야' '학생들은 너무해! 너희에게는 미루면 그만일 과제였겠지만 우리는 제출되고 싶은 과제였다고!' '혹시… 넌 과제를 밀린적 있나? 피치못할 사정이든 아니든 과제를 버려둔 적이 있냐고!'
'그래, 그래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는거야!' '과제를 밀리지 않은 채로 말이지.' 그것으로부터 강한 신뢰가 느껴진다. 언젠가 과제가 생기게 된다면, 마감 기한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자.
'그래서 였구나 네가 이곳에 오자마자...' '이 종이 뭉치들이 미친듯이 너를 향해 부스럭 거리고 있다고, 들려?' '여기에 적힌 건, 네 이름이지?' 반가움인지 원망의 표출인지 색 바랜 종이들이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쩔 수 없지. 담담하게 지난 날의 과오를 마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