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달의기억
No Image붉은빛이 드리운 텅 빈 연회장. 그 중앙에서 홀로 왕좌에 묶인 왕이 천천히 팔을 들어올리자, 흐릿한 선율이 차가운 안개처럼 발목을 적신다. 마치 우리를 초대하는 듯, 정중한 태도로 고독한 왕은 멀지 않은 단상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각기 다른 표정의 가면들이 놓여있다. 어느 것은 더 없이 기뻐하고, 어느 것은 더 없이 슬퍼하며, 어느 것은 더 없이 분노한다. 우리는 어떤 얼굴로 왕을 마주해야할까.
환희하는 가면을 얼굴에 가져대었다.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수감자들은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당당하게 연회장으로 들어선다. 안식처가 되지 못한 왕좌. 이 전투가 영원히 홀로 있을 왕에게 순간이나마 환희를 안겨주길 바라며 한없이 기쁜 얼굴로, 수감자들이 성대한 연회의 막을 올린다.
슬퍼하는 가면을 얼굴에 가져대었다. 사방을 옥죄던 압박감이 점차 잦아든다. 수감자들은 차분한 걸음걸이로 고요하게 연회장으로 들어선다. 안식처가 되지 못한 왕좌. 이 전투가 영원히 홀로 있을 왕에게 순간이나마 위안을 안겨주길 바라며 그저 슬픈 얼굴로, 수감자들이 성대한 연회의 막을 올린다.
격분하는 가면을 얼굴에 가져대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여느 때보다 힘이 들어가는 손. 왕좌의 앞, 그곳으로 수감자들은 단숨에 달려간다. 안식처가 되지 못한 왕좌. 이 전투가 영원히 홀로 있을 왕에게 순간이나마 열락을 안겨주길 바라며 투지로 가득찬 얼굴로, 수감자들이 성대한 연회의 막을 올린다.